읽어본 책

슈퍼 괴짜 경제학, 괴짜처럼 생각하라

뻔돌이 2019. 1. 16. 21:29





 



2005년 <괴짜 경제학> 을 쓴 저자들이 뒤이어 낸 책들이다. <슈퍼 괴짜경제학> 은 2009년, <괴짜처럼 생각하라> 는 2014년에 나왔다.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 작가 스티븐 더브너 두 사람이 거의 10년에 걸쳐 계속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며 책을 쓴 건데, 내가 읽은 다른 인문분야 책들에 이들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그동안 책이 참 많이도 팔렸나보다. 유아용 카시트가 안전벨트보다 더 안전하지는 않다고 주장하고 광고가 정말 효과가 있는지 의심하고 지구 온난화를 둘러싼 충격적인 연구들을 소개하는 등 논란을 일으키고 선동가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말 그대로 괴짜스러운 생각과 연구들이 꽤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면서도 실용적인 면이 있어 인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경제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인데 막상 그 내용은 우리가 흔히 말하고 생각하는 그런 경제가 아니다. 서론에 그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경제학적 접근 방식' 과 호기심과 데이터를 가지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지 예측하고 설명하는 수단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괴짜 천재의 실전경제학" 이란 국내판 부제는 표현을 잘 한 것 같다. 경제학적 접근 방식에 대해선 게리 베커의 말을 인용했는데, 저자들의 인센티브 이론을(?) 잘 대변해준다. 사람은 단지 이기심이나 이득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한 가치관과 선호에 의해 의도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동경제학과는 달리, 사람들이 여러가지 심리적인 편향 오류를 저지르며 늘 합리적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으음, 그렇다고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센티브다. 아예 세번째 책에서는 제목에 경제학이라는 단어도 빼버리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물론 인센티브를 중심으로.


<슈퍼 괴짜경제학> 원래 부제는 "지구한랭화와 애국적인 매춘부, 그리고 왜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는 생명보험에 가입해야 하는가?" 라고 한다. 영국에서 금융사기 감독관과 함께 연구하여 은행 거래 내역 등의 데이터를 통해 테러리스트들의 독특한 행동 패턴을 찾아냈다고 당당하게 밝혔는데, 이후 그 때문에 수많은 비난을 받아야 했다. 테러리스트들을 잡아내기 전에 정체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테러리스트들을 잡기 위한 수작이었다. 테러리스트 색출 알고리즘이 단 0.1% 라도 오차가 있으면 수십만명의 인구 중에서 수백명의 억울한 용의자가 생길 수 있으므로, 정확도가 99.999% 정도는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 높은 정확도를 위해 함정을 파기로 한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이 거래 은행의 생명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요한 패턴 중에 하나인 것처럼 떠벌려서 거꾸로 테러리스트들이 거래 은행에서 생명보험에 가입하도록 유도하여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한 것이었다. 그 결과 테러리스트 용의자 명단을 비교적 짧게 압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작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괴짜처럼 생각하라> 에서 이 내용을 고백했다. 아, 이 발칙한 꾀돌이들 같으니.


개인적으로 <슈퍼 괴짜경제학> 에서는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을 연구한 것이, 그리고 <괴짜처럼 생각하라> 에서는 인센티브 원칙과 설계에 대한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여러 심리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의 연구와 실험 사례를 남들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풀어내는 이야기들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그것들을 예전에 읽었던 다른 책들의 내용과 비교하며 나름 정리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람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이나 사건들을 보면서도 저다마 다르게 해석을 하는데, 각자 다른 주장을 하는 것 같아도 쓰는 용어 자체가 한정하는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서 생각해보면 비슷하거나 연결되는 부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 우화처럼, 각 분야의 학자들이 말하는 것들을 이리저리 짜맞춰서 나만의 코끼리를 상상해보는 재미라고나 할까.


'인간이 이기적인가 아닌가' 를 두고 논쟁을 벌여온 것은 아마 수천년은 되었을 것 같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영 안끝날 지도 모른다. 그와 비슷하게 '인간은 이익보다 정의를 추구하는가' 에 대한 연구도 많다. 늘 이기적인 사람이 있나? 또 늘 이타적인 사람이 있나? 누구나 어떤 때는 이기적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타적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다르지 않나? 그리고 사람은 물론 정의를 추구한다. 다만 남보다는 자기 자신한테 훨씬 너그러울 뿐. 그런데 굳이 그런 실험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통제된 환경에서 다양한 변수를 조정하면 사람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일관적인 규칙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실험실 실험의 결과들을 실험실 밖의 현실에 확장해서 적용하기는 무리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모든 사람들을 실험에 참여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협조적인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실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실제로 인간의 행동은 동기, 사회규범, 주위 환경, 처한 입장, 상황의 맥락, 서로의 관계, 기분, 타인의 시선 등 엄청나게 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실험실 환경은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현실과는 달리 한정되고 단기적이며 인위적인 자극을 주므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 진행자의 존재 자체가 피실험자의 선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실험 진행자가 의도하거나 기대한 결과가 있다면 그것이 말이나 태도로 드러날 수 있고, 그것이 피실험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만약 교수가 진행하는 실험에 학생이 피실험자로 참여한다면, 그 학생은 굳이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교수가 기대한 결과를 보여주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런 비판적인 시각과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험실 실험이 아주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실험 조건과 상황을 변형해가며 피실험자들의 행동에 차이를 발생시키는 요인들을 발견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그 많은 똑똑한 학자들이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실 실험을 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이나 경제학에서 최후 통첩 게임과 독재자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만큼이나 굉장히 유명한 실험이다. 조건과 방식을 변형한 실험들이 이어졌고, 그만큼 다양한 결과와 주장이 나왔다. 경제학, 심리학, 경영 분야의 책들에도 자주 인용되며, 인터넷에서 관련된 자료들을 매우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슈퍼 괴짜 경제학>,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착각하는 CEO>, <진화심리학> 에 나오는 내용들을 정리해보았다. 


최후 통첩 게임 


1982년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구트가 이끄는 연구팀이 논문으로 발표한 실험이 최초라고 한다. 피실험자는 제안자와 응답자로 나뉜다. 실험 진행자가 제안자에게 10달러를 주고, 응답자에게 일부를 나누어 주겠다는 제안을 하도록 한다. 응답자는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는데, 받아들이면 제안자의 제안대로 둘이 나누어 갖고, 거부하면 둘 다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실험 결과 제안자들은 대부분 응답자에게 4~5달러 를 제안했고, 제안자가 2~3달러 미만을 제안하면 대부분의 응답자가 거절했다고 한다. 응답자는 이익을 위해선 적은 금액이라도 받는 게 합리적이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부당하게 대했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그 사람을 벌주려고 한다. 제안자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최대한의 이익을 보면서도 거절당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 4~5달러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금액을 100 달러까지 높여도 그 경향은 거의 비슷했으며, 가난한 나라에서 두어달 치의 수입에 해당하는 큰 금액으로 실험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사라 솔닉은 제안자와 응답자는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사전에 이름을 전달받아 상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예측할 수 있도록 변형했다. 제안자와 응답자 모두 남자일 경우, 제안자가 남성이고 응답자가 여성일 경우, 제안자가 여성이고 응답자가 남성일 경우, 둘 다 여성일 경우를 모두 실험했는데, 남녀 제안자 모두 응답자가 남성일 경우보다 여성일 경우 더 낮은 금액을 제안했고, 남녀 응답자 모두 제안자가 남성일 경우보다 여성일 경우에 더 높은 금액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결과는 상대의 성별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의 실험 결과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에듀아르도 안드라데는 실험 참여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첫 번째 그룹에는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영화를, 두 번째 그룹에는 코미디 영화를 보여준 후 응답자로 게임을 하도록 했다. 제안자는 응답자들에게 10 달러 중 2.5 달러를 제안했는데, 첫 번째 그룹의 응답자들이 더 많이 거절했다. 영화를 본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 두 그룹의 사람들을 제안자 역할로 다시 게임을 하도록 했는데, 첫 번째 그룹의 사람들이 비교적 더 공평한 금액을 제안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는 비교적 더 관대해지고 낙관적인 상태가 되어 리스크를 수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불쾌할 때는 그 반대의 경향을 보이는데, 거기에 그 경향을 유지하려는 심리 또한 있다는 것이다. 조슈아 애커만은 온도나 촉감, 무게감이 사람들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기 위해 여러가지 실험을 했다. 그 중 한 실험에서는 참여자들에게 게임을 하기에 앞서 퍼즐 조각을 주어 완성하도록 했는데, 한 그룹은 표면이 사포로 되어 있어 까칠까칠한 것을, 다른 그룹은 표면이 매끄러운 것을 주었다. 그 후 최후 통첩 게임을 한 결과, 까칠한 감촉을 느꼈던 그룹의 사람들이 비교적 더 공평한 금액을 제안했다고 한다.


독재자 게임, 처벌 게임


1986 년 대니얼 카너먼, 잭 네취, 리처드 탈러가 최후 통첩 게임과 완전히 똑같은 게임을 구상했는데, 이미 독일 경제학자들이 발표한 것을 뒤늦게 알고 상심했다가 다시 힘을 내서 연구한 끝에 독재자 게임과 처벌 게임을 고안했다고 한다. 독재자 게임은 최후 통첩 게임과 방식은 비슷한데, 제안자는 독재자로, 응답자는 수령자로 참여한다. 독재자는 먼저 실험 진행자에게 20달러를 받은 후, 2달러와 10달러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익명의 수령자에게 주어야 하는데, 최후 통접 게임과 결정적인 차이점은 수령자는 거절할 수 없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 이제 독재자는 거절당해서 한 푼도 받지 못할 위험이 없다. 또 수령자가 누군지도 모르기 때문에 눈치볼 것도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리고 착하게도, 독재자의 75% 정도가 공평하게 절반의 10달러씩 나누어 갖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역시 최후 통첩 게임과 마찬가지로 전세계의 여러 학자들이 수없이 반복하여 실험했지만 거의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처벌 게임은 독재자 게임의 다음 단계로, 독재자를 심판하는 심판자가 있다. 심판자는 실험 진행자에게 독재자 게임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독재자 게임을 수행한 두 명의 독재자 중 한 명을 선택하여 실험 진행자에게 받은 돈을 똑같이 반씩 나누어 가질 수 있다. 수령자에게 10달러를 준 독재자 A를 선택하면 실험 진행자에게 10달러를 받아 A와 5달러씩 나누어 가지고, 수령자에게 2달러를 준 제안자 B를 선택하면 실험 진행자에게 12달러를 받아 B와 6달러씩 나누어 갖는다. 실험 결과, 80% 정도의 심판자들이 이기적인 독재자 B보다 공평한 독재자 A를 선택했다고 한다. 즉, 사람은 자신이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공정해지려는 마음, 공평한 사람에게 보상해주려는 마음, 부당한 사람을 처벌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존 리스트는 야구 카드 박람회에서 판매상과 고객들을 대상으로 거래 실험을 했다. 먼저 고객은 4달러에서 50달러 사이의 미리 정해진 금액 다섯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 판매상에게 카드 한 장에 그만큼 지불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그러면 판매상은 그 가격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카드를 파는 것이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경제학 실험을 진행중이라고 설명하여 판매상과 고객을 별도의 장소로 데려가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고객들은 평균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했고 판매자들은 그에 걸맞는 카드를 건네주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일부 고객들에게만 실험을 설명한 후, 실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판매상들에게 데려가 금액을 제안하도록 했다. 실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던 첫 번째 실험에서와는 달리, 판매상들은 이번에는 고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특히 첫 번째 실험에 참여를 거부한 판매상들이 참여한 판매상보다 두 번째 실험에서 고객을 속이는 비율이 더 높았다. 그 외 타지에서 온 원정 판매상들도 고객을 속이는 비율이 더 높았다고 한다. 


이후, 존 리스트는 독재자 게임을 변형한 실험을 했다. 첫 번째로, 독재자는 자유롭게 금액을 정해 수령자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데, 반대로 수령자의 돈을 1달러 빼앗을 수 있는 선택이 추가되었다. 그러자 기존 실험과는 달리 수령자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비율이 현저히 낮아졌다. 35% 는 돈을 나누어주었지만, 45% 정도는 한 푼도 나누어주지 않았고, 20% 는 오히려 돈을 빼앗았다. 두 번째로, 독재자와 수령자에게 똑같은 액수의 돈을 나누어주고 그 사실을 독재자에게 알려준 다음 그 돈을 다시 자기 마음대로 배분할 수 있게 변형했다. 그랬더니 독재자의 60% 이상이 수령자의 돈을 빼앗았다고 한다. 그 중 반 이상은 수령자의 돈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빼앗았다. 마지막 세 번째로, 독재자와 수령자는 실험 진행자에게 돈을 받기 전에 봉투에 돈을 집어넣는 일을 해야 했다. 독재자나 수령자나 둘 다 자신들이 노동의 댓가로 돈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한 후 게임을 진행했더니 독재자의 28% 정도만이 수령자의 돈을 빼앗았고, 나머지는 주지도 않고 빼앗지도 않았다고 한다. 


피터 드치올리는 소유자와 수취자로 나누어, 소유자에게 1달러를 지급한 후 수취자에게 소유자의 돈에서 90센트 와 10센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빼앗게 하는 실험을 했다. 15초 이내에 선택을 하지 않으면 수취자는 85센트를 받으며, 소유자는 한 푼도 가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수취자가 아무 선택을 하지 않는 것보다 90센트를 선택하는 것이 둘 다에게 이익이다. 수취자의 65%는 90센트를 가지겠다고 선택했고, 28%는 15초를 기다렸다가 85센트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심판자를 추가했다. 심판자는 수취자의 결정을 보고 최대 30센트까지 수취인이 받는 돈을 줄일 수 있다. 그랬더니 아무 결정을 내리지 않고 15초를 기다리는 비율이 51%로 늘어났다. 심판자가 추가됨으로써 수취자는 오히려 자신과 소유자 둘 다 더 손해를 보는 선택을 더 많이 하게 된 것이다. 이상하게도 10센트만 받겠다고 선택한 이타적인 수취자도 줄어들었다. 반면, 심판자는 아무 선택을 하지 않은 수취자보다 90센트를 선택한 수취자의 돈을 더 많이 감액시켰다.


공공재 게임


누가 최초로 고안했는지는 모르겠다. 1954년 폴 새뮤얼슨은 시장 경제로는 공공재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이 정부가 개입하여 세금을 통해 시민들이 공동으로 부담하는 방식으로 공공재를 공급하지 않으면 공공재 문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고안된 공공재 게임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피실험자 10명에게 5달러씩 지급한다. 피실험자들은 각각 서로 모르게 그 돈의 일부를 다시 공동 계좌에 넣어 기부하도록 한다. 그 다음 공동 계좌에 모인 돈의 2배를 다시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준다. 만약 피실험자 모두가 자기가 받은 5달러를 전부 기부한다면 10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혼자만 전부를 기부하고 나머지는 한 푼도 기부하지 않으면, 1달러밖에 돌려받지 못한다. 평균적으로 피실험자들은 받은 돈의 절반 정도를 기부하지만,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할수록 협력 비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피실험자 중 경제학 대학원생들의 기부 비중이 다른 학생들보다 낮았다는 것이다. 제임스 안드레오니는 공공재 게임을 살짝 수정하여 두 단계로 실험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다섯 명의 피실험자들에게 게임을 열 번 반복시켰는데 알려진대로 협력 비율이 낮아졌다. 두 번째 단계로 동일한 피실험자들에게 같은 사람들과 게임을 열 번 더 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첫 번째 단계의 첫 게임과 비슷한 수준으로 협력 비율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공공재 게임에서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이른바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전략과 비슷하다. 1980년대에 로버트 액설로드와 해밀턴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200번 수행하여 승자를 가리는 컴퓨터 시합을 개최하였는데, 4줄짜리 포트란 명령문으로 짠 전략이 우승하였다. 그것은 바로 '받은 만큼 되돌려주기' 였다. 첫 번째는 협력하고, 두 번째부터는 상대가 한 대로 대응하는 것이다. 상대가 협력하지 않으면 똑같이 협력하지 않고, 상대가 다시 마음을 바꾸어 협력하면 똑같이 협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부 호혜성' 전략을 펼치는 사람들을 '조건부 협력자' 라고 부른다. 로버트 쿠르즈만과 대니얼 하우저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공재 실험을 여러번 수행했다. 기부 횟수는 4~34 회까지 다양했는데, 기부가 한 차례 끝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공동 계좌에 얼마나 모였는지 알려주었다. 그 결과 매번 기부하는 협력자는 약 13%, 조건부 협력자는 약 63%, 기부를 하지 않는 무임승차자는 약 20% 정도로 분포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판단하기 힘든 이유는, 이와 같이 조건부 협력자가 가장 많기 때문일 수 있다.


심리학자 린다 캐포렐은 인간의 이기심이나 이타심은 사회적 관계에 달려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공공재 실험을 변형하여 연구하였다. 9명의 피실험자들에게 5달러씩 준 다음, 한 푼도 기부하지 않거나 전부 기부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만약 5명 이상이 기부하면 모두 10달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부자가 5명 미만이면 이미 기부한 사람들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지만, 기부하지 않은 사람은 받았던 돈을 그대로 가질 수 있다. 기부하면 돈을 잃을 위험이 크다. 하지만 기부하지 않으면 적어도 그 돈을 유지할 수 있다. 매번 실험할 때마다 기부자는 5명을 넘지 못했다. 캐포렐은 이어서 실험 시작 전에 사람들이 서로 10분간 이야기할 시간을 주었다. 그랬더니 기부자는 평균적으로 7~8 명을 유지했다고 한다. 바르다 리버만은 피실험자들을 둘로 나누어 한 그룹은 '커뮤니티 게임' 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그룹은 '월스트리트 게임' 이라는 이름으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비슷한 게임을 하게 했다. 그 결과, 동일한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게임의 이름을 '월스트리트 게임' 이라고 알고있는 그룹의 피실험자들이 훨씬 비협조적이었다고 한다.


심리학 교수 크레이그 파크스는 5명의 학생들을 팀으로 구성하여 비슷한 게임을 실험했다. 학생들에게 10포인트를 지급한 후 각자 공동계좌에 원하는만큼 기부하면 두 배가 적립되고, 각 학생들은 공동계좌에서 최대 4분의 1까지 포인트를 인출하여 자기 계좌에 옮길 수 있었다. 한 팀의 학생들은 그렇게 10번 기부 라운드를 진행 후 자기 포인트를 교내에서 통용되는 쿠폰으로 교환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각 학생들에게 다른 4명의 팀원들이 얼마나 기부하고 인출했는지 알려주고 평가하게 했다. 그 결과 당연히 적게 기부하고 많이 인출하는 팀원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많이 기부하고 적게 인출하는 이타적인 팀원보다 적게 기부하고 적게 인출한 팀원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험을 여러 번 해도 대체로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학생들은 이타적인 팀원을 낮게 평가한 이유로 아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거나 다른 팀원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거의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인간이 선천적으로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에 관심이 많았다면, 현대의 학자들은 인간이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상황이나 조건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진화심리학> 은 생존과 짝짓기를 통해 자신의 복제를 남기고 전달하려는 것이 유전자의 가장 중요한 최대 목표라는 전제로 인간의 거의 모든 심리와 행동을 수십만년에 걸쳐 진화해온 유전자에 각인된 적응 기제, 혹은 자연 선택으로 해석한다. 그 중에는 친족 뿐 아니라 비친족에 대한 이타성도 포함되어있다. 유전적인 유사성이 있는 친족끼리의 이타적인 행위는 쉽게 이해할 수는 있지만, 유전적으로 전혀 유사성이 없는 사람에 대한 이타적인 행위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했다. 유전자의 목표를 생각하면 인간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데 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지에 대해 진화심리학자들은 상호적 이타성 이론으로 설명한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보상을 받는다면 이타적인 행동이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우정까지로 그렇게 진화한 결과라고 본다.


예를 들어, 두 사냥꾼이 있는데 한 사냥꾼이 사냥에 성공했지만 다른 사냥꾼은 실패할 수 있다. 이 때 고기를 잡은 사냥꾼이 고기를 같이 나누어 먹는다면, 나중에 반대로 자신이 사냥에 실패하고 다른 사냥꾼이 성공했을 때 고기를 나누어 받아서 먹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사냥 성공률이 안정적이지 않다면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므로 상호적 이타성이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보답을 하지 않는 사기꾼이 가장 생존에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이타적인 척하며 도움을 받는 사기꾼 심리 역시 진화했다. 만약 이타적인 사람이 사기꾼에게 당하기만 한다면 생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실하게 이타적인 사람과 간사한 사기꾼을 구별하고 간파하는 능력 역시 발달하게 되었다. 이런 진화 과정을 거쳐 사람들은 진정성 있는 사람들에게 더 끌리고 사기꾼을 처벌하고 싶어하게 된 것일 지도 모른다.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며 조건부 협력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이유도 설명이 된다. 만약 사람들이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을 정확히 간파할 수 있다면, 결국 이타적인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이타적인 사람들이 상대해주지 않기 때문에 똑같이 이기적인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괴짜 심리학> 에서는 인간의 선행, 악행, 정직성에 대한 부분에서 재미있는 실험이 나온다. 은행의 현금 입출금기를 조작하여 사람이 앞에 서면 지폐가 튀어나오게 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은밀하게 관찰한 실험이다. 피실험자들은 자신이 관찰 당하고 있다는 것을 끝까지 몰랐다고 한다. 관찰 결과, 3분의 2 이상이 돈을 갖고 튀었다고 한다. 앞에 서면 돈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여러 번 되돌아와 돈을 가져가기도 했고, 그 중에는 20번이나 되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대형 서점에서 했다. 서점 주인에게 사전에 협조를 요청하여 손님들에게 더 많은 거스름돈을 주도록 했는데 대부분의 손님이 거스름돈을 그냥 가져갔다. 이어서 방법을 바꿔 주인이 거스름돈을 준 후에 다시 손님에게 거스름돈이 얼마였는지 물어보게 했는데, 정직하게 말한 사람 역시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골목길의 작은 서점에서 실험을 했는데, 거기서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더 많이 받은 거스름돈을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나중에 정직한 고객들을 인터뷰했는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은행이나 대형 서점에서 정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는 말이다. 진화심리학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유사성 선호 적응 기제 이론이 있다. 그 외에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고 더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여러 실험들이 나온다. 또한 종교인이 장사꾼보다 더 이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 인구밀도와 생활 속도와 공동체 의식이 사람들의 친절도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여러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을 비교한 실험도 재미있다.


이런 실험들을 보면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참으로 복잡하고 설명하기 힘든 것 같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원칙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상대적인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보여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공평함을 예로 들면, 내가 이미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반씩 나누는 것을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보다 더 소유한 사람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나누어 받아야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공평을 따지려면 서로 기준이 되는 시작점이 있어야 한다. 어느 시점의 어느 상황을 서로 공평한 시작점으로 볼 것인지가 저마다 입장에 따라 다른 것이다. 독재자 게임의 변형 실험을 보면 바로 그 시작점을 바꾸어 상황을 판단하는 관점을 바꾼 것이 많다. 어쩌면, 공평함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을 나타내는 것일 지도 모른다. 자기 것을 챙기려는 마음이 강하면 공평하지 않는 것에 더 민감해지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결론적으로는, 인간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마음이나 행동 모두 변하며 또한 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해도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만들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는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사악한 사기꾼 무리를 그대로 두면 우리 모두가 위험해지니까. 그렇다고 그들을 모조리 찾아서 없애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쁜 놈들은 전부 죽여버려야 해! 라고 외치는 당신이 바로 그 나쁜 놈일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변화시켜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기꾼 이외에도 많다. 양보와 화합과 평화를 위해서는 어쨌거나 누군가는 변해야 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 변화시켜야 할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생각은 당근과 채찍이다. 다시 말해 인센티브다. 그 중에서도 금전적인 인센티브다. 특히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하거나 주겠다고 꼬시는데, <괴짜처럼 생각하라> 에서는 이에 대한 웃기는 얘기가 나온다. 저자 중 한 명이 딸 아이가 변기를 사용하도록 배변 훈련을 시키면서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 초콜릿을 주겠다고 했다. 몇 일 동안 아이는 훌륭하게 변기 사용에 적응한 듯 보였다. 하지만 나흘째 되는 날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이는 방광을 조절해 몇 분마다 초콜릿을 요구하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오줌을 '나누어 누기' 시작한 것이다. 


금전적 인센티브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시장 규범으로 작용하여 비시장 사회 규범을 몰아내고 변질시킨다는 것은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예로 스위스에서 핵 폐기장 건설을 위해 금전적인 보상을 제시하자 오히려 그 전보다 찬성률이 더 떨어졌다는 얘기가 유명하다. 또한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잘못 사용하면 큰 반감을 살 수 있다. 푼돈으로 사람을 낚시질하려 들면 그 사람은 아마 '아니, 겨우 이까짓 것 가지고 나를 구워 삶으려고? 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하면서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반대로 행동할 것이다. 금액을 적절히 조정한다고 해도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돈 맛을 본 사람들은 슬슬 욕심이 커지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질투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위험하다. 금전적 인센티브는 받는 사람에게는 당근이지만,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채찍으로 느껴진다. 그러면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발생하고, 분쟁으로 번진다. 


인센티브는 금전적인 것 외에 사회적, 도덕적 인센티브 등 비금전적인 것도 많다. 그러니까 특정 상황에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면 그 상황에서 그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 라고 묻는다고 그 사람이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 그 사람 스스로 자신이 뭘 진짜로 원하는 지 알까? 이 책의 저자들은 '공표된 선호' 와 '폭로된 선호' 라는 말로 표현했다. 유발하라리는 대니얼 카너먼의 '경험하는 자아' 와 '이야기하는 자아' 를 인용하며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고 섬뜩한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실제로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원하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하고 또한 그것을 그대로 말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요인, 말하자면 그저 본능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군중심리 같은 것이 그렇다. 


1950년대 솔로몬 애쉬는 동조 심리에 관한 실험을 했다. 한 장의 카드에 선이 하나 그려져 있고 다른 한 장의 카드에는 길이가 각각 다른 선이 세 개 그려져 있는데, 실험자가 세 개의 선 중 다른 한 장의 카드에 그려진 선과 길이가 같은 선을 하나 고르는 것이었다. 이 때 혼자있을 경우에는 모두 정답을 맞췄는데, 미리 짜고 먼저 틀린 답을 고르도록 한 연기자들이 여럿 있을 경우 가장 나중에 답을 고르는 피실험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머뭇거리면서도 그들을 따라 틀린 답을 고르는 경우가 30% 이상 되었다고 한다. 단지 선의 길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조차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니,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에 대한 것이라면 아마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런 심리 역시 진화해온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호랑이나 사자 등 위험한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수 있는 수렵 채집인 시절, 주변 동료가 갑자기 허겁지겁 달려가면 무슨 일인지 둘러보거나 생각하기 보다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같이 달려가는 게 상책이었을 것이다. 일단 무작정 도망을 쳤는데 알고보니 열매가 떨어진 소리였다면 그저 잠깐 숨을 헐떡거리면서 에잇 놀랬잖아! 하면서 투덜거리는 것으로 끝날테지만, 정말 포식자가 먹이감을 노리고 덮치려는 상황이었다면 가만히 있다가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심사숙고 하기보다는 직관적인 행동이 앞섰던 조상들이 끝까지 살아남아 그들의 유전자가 아직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허무맹랑한 소리 같기도 하고 말이 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설득의 심리학>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군중 심리 관련한 여러가지 실험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중요한 힌트를 주었다. 그는 에너지 절약 운동에 뛰어들어 집집마다 현관문 손잡이에 에너지 절약 메시지가 적힌 카드를 걸었다. 메시지는 모두 네 가지로, '에너지 절약으로 환경을 보호하자',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하자', '에너지를 절약하여 돈을 절약하자',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지역 주민들의 운동에 동참하자' 였다. 그 중 가장 효과가 큰 것은 네 번째 메시지였다고 한다. 그는 계속해서 월별 통지문에서 해당 가정의 에너지 소비량과 함께 이웃 주민들의 평균 소비량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그랬더니 평소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 가정은 소비량을 줄인 반면, 반대로 절약을 했던 가정은 오히려 소비량이 늘어났다. 자신이 남들보다 에너지를 적게 소비한다는 것을 알고 더 많이 사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에너지를 절약한 가정의 통지문에 에너지 사용량 수치 옆에 웃는 얼굴 그림과 칭찬하는 문구를 추가하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는 생활을 유지했다고 한다.


로버트 치알디니는 애리조나 주 석화림 국립공원에서 석화목 보호 캠페인 실험을 하기도 했는데, 자연 환경 훼손 사실을 말하고 호소하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고 했다. "석화목을 훔쳐가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매년 손실되는 석화목이 14톤에 달합니다" 라는 내용의 경고 표지판을 세워두고 근처에 석화목 조각을 뿌려놓았다. 그랬더니 경고판을 세우지 않은 곳보다 세운 곳에서 3배나 많은 석화목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석화목이 이렇게 빨리 사라지고 있어? 어서 빨리 내 것도 하나 챙겨야겠는걸!' 혹은 '1년이 14톤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하나 가져가는 것 쯤이야 별 거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도덕적인 의무를 강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른다고 호소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옳은 일이라는 것은 좋은 결과를 위한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면 결과에 따라 옳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다. '나 하나 정도는 잘못해도 다들 잘 하고 있으니 괜찮을 거야', '다들 그러는데 나 하나쯤 더 한다고 해서 뭐 더 나빠질 게 있겠어?' 같은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옳은 일은 옳기 때문에 해야한다. 다들 그렇게 한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지도 모른다.


군중 심리는 또한 소속감, 자긍심 같은 마음과도 연관이 있다. 리처드 밀러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복도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어떤 학급에는 '너희 교실이 가장 깨끗하다', '너희처럼 교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다니 자랑스럽다' 와 같은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여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반면 다른 학급에는 '청소하는 아이들을 도와야한다', '쓰레기는 반드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와 같이 의무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후 관찰을 해보았는데, 자긍심을 느끼게 해준 아이들이 더 오랫동안 교실을 깨끗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미국 텍사스 주에서는 고속도로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시민의 의무임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는데, '진정한 텍사스인이라면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라고 캠페인의 메시지를 변경하자 큰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러한 심리는 감정에 호소하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선동가에 의해 악용되어 맹목적인 집단 행동에 빠지는 것 따위의 모습 때문에 좋지 않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잘 이용하면 바람직한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기도 하다.


<괴짜처럼 생각하라> 에서는 브라이언 멀래니의 자선사업 기부금 모금 사례를 들어 사람을 움직이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준다. 멀래니는 사람들이 기부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진정으로 이타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기부를 하면서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는, 말하자면 비순수 이타주의자도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압력을 느껴 어쩔 수 없이 기부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멀래니는 세 번째 유형의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그는 기부금 권유 우편물에 회신용 엽서를 넣었는데, 그 엽서에는 세 가지 선택 사항이 있었다. 첫 번째 선택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부하는 것이니 자신에게 다시는 기부 요청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 두 번째 선택은 1년에 2번만 받겠다는 것, 세 번째 선택은 관심이 있으니 정기적으로 우편물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즉, 기부 요청을 받은 사람은 한 번만 기부금을 보내면 다시는 기부 요청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1회로 끝내기' 라고 이름붙인 전략이었는데, 놀랍게도 전체 기부액이 46%나 증가할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그것도 단기적인 효과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한 번만 내고 끝내겠다는 선택을 한 사람은 약 30%에 불과했다. 저자들은 멀래니의 기부금 모금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선단체와 기부자 사이의 '관계의 틀' 을 변화시켜서 기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자선단체들이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끈질기게 달라붙는 방식으로 기부자들을 괴롭히는 것과는 달리, 원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귀찮게 굴지 않겠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그들을 존중해주고 거부감이나 부정적인 인상을 느끼지 않도록 한 것이다. 말하자면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굳어진 부정적인 관계의 틀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런 경우는 기업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흔히 금전적인 인센티브의 시장규범이 비시장 사회규범을 몰아내는 것과 반대로, 비시장 사회규범 강화되도록 유도하고 장려하여 거꾸로 시장 규범을 약화시키고 개인의 행복 뿐 아니라 조직의 협력까지 이끌어내는 사례들이 그렇다.


저자들은 인센티브가 간혹 끔찍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여러 사례들을 들면서,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고 관계의 틀을 변화시켜 협력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더 나은 설득을 위한 몇가지 교과서스러운 지침을 알려준다. 음, 이론은 쉽지만 현실은 글쎄. 그래도 상대방을 절대 모욕하지 말라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다툴 때 설득하려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욕보이고 깔고 뭉개면서 기를 죽여서 굴복시키려는 경우가 더 많다. 오히려 배울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더 그러는 것 같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가장 심한 것 같은데, 서로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윽박지르거나 마치 아랫 사람을 혼내면서 훈계하듯 큰소리를 치곤 한다. 왜 정치인들이 화합하지 못하고 자꾸 말을 이랬다 저랬다 바꿔가면서 싸우기만 하는지 알 만하다. 그 외 저자들이 말한 설득의 요령 중 특이한 것은 이야기를 동원하라는 것이다. 단순한 개인적인 일화를 넘어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입체적인 스토리텔링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글쎄, 스토리텔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목사님들 같은 비범한 이야기꾼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인데.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뜬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는 오히려 자신들을 어린애 취급한다고 더 상황이 안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재미있으면서도 뼈있는 이야기는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적어도 남의 말에 어느 정도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한테는.


사실 이해 관계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은 정말, 정말로 피곤한 일이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짜증나고 넌더리날 때가 점점 더 많아진다. 그러다보니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서로 건드리지 말자, 라는 식으로 서로 못본 척 관심을 갖지 않고 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사람들 없는 곳에서 가족끼리 따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사는 게 어디 그럴 수가 있나. 어쩔 수 없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갈등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누구나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을 내 뜻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 같은 책들을 읽게 되는 것일 게다. 어쩌면 어떤 경우에도 통하는 설득의 요령이나 방법 따위는 없을 지도 모른다. 에너지 절약하는 것 정도는 특별한 요령 같은 것이 통할 지는 몰라도, 인생의 의미가 걸린 중요한 문제들은 전혀 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을 내 뜻대로 설득하고 말겠다는 의지보다는 참고 기다리는 의지가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나와 의견이 다를 지 몰라도, 서로 존중해주면서 함께 어울리고,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서로 이해할 날이 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묵묵히 기다리는 그런 의지 말이다. 




● 슈퍼 괴짜경제학 목차


이 책을 읽기 전에 - 우리의 두 가지 거짓말에 대한 해명

들어가며 - 괴짜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음주운전과 음주보행,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

인도 여성들을 해방시긴 뜻밖의 물건

100년 전 대도시를 괴롭혔던 말의 배설물 문제

괴짜경제학이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

1장. 길거리 매춘부와 백화점 산타클로스가 노리는 것 : 비용과 가격에 관한 진실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매춘이라는 비즈니스가 영원한 이유

왜 매춘부들은 예전보다 가난해졌을까?

오럴섹스의 가격이 싸진 이유는?

포주와 부동산업자가 하는 일

길거리 매춘부와 백화점 산타클로스의 공통점

그 많던 교사들은 어디로 갔을까?

고액연봉 매춘부 엘리

2장. 자살 폭탄 테러범들이 생명보험에 들어야 하는 이유 : 행운과 패턴의 위력

출생 효과

그들은 왜 테러리스트가 되었나

9/11이 바꾼 것들

최신 응급실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이유는?

훌륭한 의사와 형편없는 의사를 구분하는 법

죽음을 피하는 다양한 방법들

테러리스트의 은행 거래

가능성의 역이용

3장. 38명의 살인 방관자 : 냉담함과 이타주의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

키티 제노비즈 사건

TV는 어떻게 범죄를 부추겼나

인간이 이타적이라고? 세상에!

독재자 게임

그게 과연 이론적으로도 옳을까?

실험실의 오류

이타주의에 관한 추한 진실

냉담항 목격자, 그들의 이야기

4장. 죽음을 낳는 병원의 미스터리 : 모든 일에는 값싸고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신생아 사망의 수수께끼

저렴하고 놀라운 해결책

안전띠가 가져다준 것들

카시트는 과연 안전할까?

허리케인을 막는 기상천외한 방법

5장. 앨 고어와 피나투보 화산의 공통점은? : 지구를 구하는 외부효과의 마술

지구를 사랑한다면, 캥거루 고기를 먹어라

불확실성에 대한 유별난 공포

온난화의 핵심, 외부효과

화산 폭발이 지구를 구원하리라

이산화탄소 논쟁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는 온갖 방법들

앨 고어와 피나투보 화산

차가워져야 보인다

외부효과에 주목하라, 원하는 것을 이룰 것이다.



● 괴짜처럼 생각하라 목차


1단계. 왜 패널티킥을 한가운데로 차지 못하나 : 두뇌 재부팅하기

2단계. 영어에서 가장 말하기 힘든 세 마디는? : 모른다는 사실 알기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라

미래 예측의 인센티브와 도덕 나침반

가치 있는 피드백을 모아라

비싼 와인이 정말 더 맛있을까?

3단계. 작고 마른 당신이 핫도그 먹기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 잘못된 질문 바로잡기

질문이 잘못되면 잘못된 답을 얻는다

핫도그 먹기 대회의 우승자

작고 마른 그가 가장 많은 핫도그를 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공장벽을 무시하는 법

4단계. 젊은 의사는 왜 위험한 박테리아를 통째로 삼켰나 : 근본 원인 찾기

1900년대 초 강력 범죄율이 줄어든 이유는?

마르틴 루터는 독일 경제에 무슨 영향을 남겼는가?

노예 상인은 왜 구매하려는 노예의 피부를 핥았나?

궤양의 근원을 밝힌 괴짜 의사

5단계. 어른보다 아이를 속이는 마술이 더 힘들다 : 아이처럼 생각하기

수조 달러의 교육개혁보다 15달러짜리 안경 하나

명백한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괴짜들은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어른보다 아이를 속이는 마술이 더 힘든 까닭은?

6단계. 사람들의 주머니로부터 기부금을 걷어 들이는 방법 : 인센티브의 기본 원칙

초콜릿으로 배변 훈련하기

금전적 인센티브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기부를 유도하는 가장 혁신적인 생각

관계의 틀을 바꾸는 인센티브 전략

때로 인센티브가 끔찍한 역효과를 내는 이유

7단계. 솔로몬 왕과 데이비드 리 로스의 공통점 : 인센티브 설계하기

정원이 스스로 잡초를 뽑게 하기

무죄라면 끓는 물에 손을 넣어도 멀쩡할 것이니

자포스가 인재를 가려내는 법

왜 어떤 사기꾼은 자기가 사기꾼임을 팍팍 티내고 다닐까?

은행 이용 데이터로 테러리스트 찾기

8단계. 무인자동차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해보시오 : 다른 사람 설득하기

설득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설득당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법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다

자신의 주장이 완벽한 척하지 마라

상대방 주장의 강점을 인정하라

상대방을 절대 모욕하지 마라

설득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이야기

왜 이야기를 동원해야 하는가

9단계. 당신을 대신해 동전을 던져드리겠습니다 : 괴짜처럼 포기하기

윈스턴 처칠은 틀렸다

오늘 쓸모없는 것을 버리지 않으면 내일의 문제를 풀 수 없다

당신을 대신해 동전을 던져드리겠습니다

그만두는 것이 괴짜처럼 생각하기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