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본 책

보이지 않는 고릴라

뻔돌이 2018. 11. 17. 17:52


흥미진진한 여러 사례와 실험을 통해 인간의 인지 능력이 얼마나 많은 오류와 착각을 일으키는지 보여주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주는 책이다. 사례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재미도 있고, 이론 설명도 이해하기 쉽게 되어있다. 번역도 어색하지 않아 읽기 편하다. 하루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술술 읽히는 책이다. e-book 으로 읽었는데, 목차 기능은 좀 부실하다. 링크가 최상위 목차에만 걸려있고 하위 목차에는 안걸려있기 때문에 다시 읽고싶은 부분으로 곧바로 넘어가기 불편하다.


이 책 때문에 블로그를 만들고 읽은 책에 대해 글을 쓸 결심을 하게 되었다. 올해 초에 사무실 동료의 전자책을 본 후 나도 전자책을 사서 편하게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크레마 카르타를 구입했고, 그 후 yes24 에서 지금까지 거의 80 권의 책을 샀다. 출퇴근 길에, 점심시간에, 집에서 저녁에 책을 읽었는데, 일주일에 1~2 권씩은 본 것 같다. 근데 이 책에서 '기억력 착각' 과 '지식 착각' 부분을 읽던 중,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읽은 적은 있지만 읽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그 내용이 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끔 책 많이 읽었다고 뿌듯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뭔 내용인지 기억도 못하면서 뿌듯해하기만 했다니,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글로 정리함으로써 그 내용을 다시 곱씹어보고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한가지라도 좀 더 오래 기억하고자 한다. 


이 책은 1995 년 미국 보스턴의 사건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범행 후 도주하는 흑인 4인조 강도를 경찰이 추적하는 동안, 무전을 받고 사방에서 더 많은 경찰들이 모여들었다. 범인들을 추적하는 경찰들 중 역시 흑인인 콕스 경관이 있었는데, 경찰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던 그가 범인을 쫓아 울타리를 넘는 중 그를 범인으로 오인한 다른 경찰들에게 공격을 받아 뇌진탕을 입고 신장까지 손상되는 부상을 당할 정도로 심하게 묻지마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는 사이, 콘리 경관이 바로 그 옆을 지나 범인을 추적하여 마침내 체포한다. 그러나, 콕스 경관 폭행 사건을 재판하는 중 콘리는 콕스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정말 보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실제 콕스 경관을 폭행한 경찰들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고, 증언한 콘리만 위증죄로 고소당해 실형이 선고되어 해임되고 감옥에 갇혔다. 여담이지만, 이후 검찰이 일부 증인의 신뢰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FBI 의 메모를 콘리의 변호인에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5 년 상고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뒤집혔다. 콘리는 이후 복직되어 11년 간의 급여 65만 달러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이어 이 책의 저자들이 수행한,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 소개된다. (http://www.theinvisiblegorilla.com/) 학생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져 이리저리 움직이며 같은 팀끼리 농구공을 서로 주고받고 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는데, 중간에 고릴라 의상을 입은 학생이 들어와 가운데에 서서 자기 가슴을 치다가 나가도록 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하얀색 옷을 입은 학생들의 패스 횟수를 세어 보라고 말한 후 그 동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절반 정도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하는 바람에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눈 앞에서 지나가는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은, 예상하지 못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주의력 부족의 결과이며, '무주의 맹시 inattentional blindness' 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자들이 콘리 경관에게도 같은 실험을 했는데, 패스 횟수를 정확히 셌을 뿐 아니라 고릴라도 봤다고 한다. 그는 사건 재판 당시 범인을 추적했던 자신의 상황을 '터널 시야 tunnel vision' 라는 말로 표현했다는데, 그러면서도 동영상을 본 사람들 중 절반 정도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고 한다. 



사람은 한 가지에 집중하면 종종 다른 것을 잘 보지 못하곤 한다. 무언가에 시선을 두었다고 해서 의식하여 본다고 장담할 수 없다. 시각 뿐 아니라 청각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바라보긴 했지만 못 볼 수 있다" 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직접 경험해도 그 실수를 인정하거나 믿지 못하고 경솔하게 판단하곤 한다. 저자들은 이를 '주의력 착각 illusion of attention' 이라고 부른다. 이어서 여러 사례와 추가 실험을 통해 주의력 착각 현상을 증명하며 그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로 인한 실수를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절반의 사람들은 '고릴라' 를 보고 나머지는 못보는데,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릴라' 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도중에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예외 상황이다. 저자들은 그런 예외 상황을 얼마나 잘 감지하느냐는 성향이나 지능, 교육 수준 혹은 주의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 예외 상황을 접해봤던 경험, 사전 경고 여부 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주위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오토바이를 더 잘 발견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이 적은 곳보다 많은 곳에서 자동차 운전자가 자전거나 사람들을 더 자주보고, 그 때문에 불의의 사고에 대해 대비하려는 마음이 있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더 낮다. 추가 실험에 의하면 농구공에 더 익숙한 농구 선수들이 핸드볼 선수들보다 실험 동영상을 봤을 때 고릴라를 더 잘 발견했다고 한다. 


주의력 착각 편에 나오는 고릴라에 이어서, 주위에서 항상 나타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언뜻 보면 재미있으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하고 소름끼치는 '또 다른 고릴라' 들이 소개된다. 그 중 가장 섬뜩한 고릴라는 기억과 자신감에 대한 것이다. '기억력 착각' 편에서 2002 년 젊은 부부인 레슬리와 타이스의 사례가 나온다. 그들은 어느 날 같이 저녁을 먹고 차를 몰아 귀가하던 중 범행 장면을 목격한다. 타이스는 교육 정책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고, 레슬리는 예일 대학에서 막 법학 학위를 탄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을 끌어내려 수차례 칼로 찔렀다. 911 에 전화를 걸어 교환원이 전화를 받기까지 1분 정도 지났을까? 20~30 대의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가해자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레슬리가 말하자 타이스가 가해자는 운동복 차림이었다고 말하며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가해자의 복장 뿐 아니라 키, 흑인인지 히스패닉인 지도 의견이 엇갈렸다. 똑같은 사건을 똑같은 위치에서 목격했는데, 서로 본 기억이 다른 것이다. 심지어 두 사람은 그들이 범행현장을 목격했던 장소의 주위 차량과 건물의 묘사, 범인과 피해자의 인상착의, 911 에 신고해서 교환원이 전화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 911 교환원과 대화를 나눈 시간, 누가 운전석이 있었고 누가 조수석에 있었는 지까지 많은 부분에서 기억이 엇갈렸다. 그들 부부는 그 사건을 계기로 충격적이고 불안하고 급박한 상황에 처한 목격자들의 진술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감 착각' 편에서는 1984년 제니퍼 톰슨의 사례가 나온다. 그녀가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 의식적으로 가해자의 인상착의를 관찰하여 기억한 다음, 범인이 방심한 틈을 타서 도망졌다. 이후 경찰 수사 결과 코튼이라는 사람이 용의자로 잡혔는데, 그녀가 그를 자신감에 차서 범인으로 지목하여 그는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보내졌다. 그런데 같은 감옥에 있던 바비 풀이라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가 진범이라고 떠벌린 것을 계기로 11년 후 상고와 DNA 검사를 통해 진범이 잡힌 사례였다. 11년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코튼은 이후 보상금을 받고 풀려나서 잘못된 유죄판결에 대한 연설을 하고 다니는데, 가끔 형사재판 개혁의 지지자로 변신한 제니퍼 톰슨도 동행한다고 한다. 그녀는 한 때 경찰과 검사들에게 자신감이 넘치는 '최고의 증인' 이라 불렸지만, 엉뚱한 사람을 감옥에 보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대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당시 상황으로 봐선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똑똑하게 대처한 대담한 여성이다. 단지, DNA 검사라는 과학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요즘 같아선 CCTV 나 각종 과학 수사의 도움을 받지만, 증인의 증언에 의존하는 수사가 얼마나 믿을만한 지 생각해볼 일이다. 아마 30년 전 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이어서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분명 우리나라의 드라마 에피소드 중 하나였던 장면이 기억난다. 변호사가 연기자를 고용해서 재판 중이었던 재판장을 습격해 범행을 똑같이 연출하게 한 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즉시 범인의 인상착의를 적어내게 했는데, 제각각 증언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을 증거로 활용하여 증인이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얼마나 증언이 왜곡될 수 있는 지를 그 자리에서 즉시 밝혀내어 억울한 사람을 구해낸 에피소드였다. 


모차르트 효과에 대한 얘기로 시작하는 '잠재력 착각' 은 학부모들이 특히 눈여겨볼만 하다. 모차르트 효과는 1993년 과학잡지 <네이처> 에 "음악과 공간 추리력" 이라는 짧은 논문이 실리면서 널리 퍼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차르트 음악을 10분 정도 들은 후 IQ 검사를 했더니 8~9 점 정도 올라갔다는 것이다. 언론은 앞다투어 "모자르트가 당신을 더 총명하게 만들어줍니다" 라며 보도했고, 이 소문은 점점 더 부풀려져 성인 뿐 아니라 아기, 유아, 태아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전설이 만들어져버렸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기업들은 학부모들을 겨냥한 DVD 와 CD 를 제작하여 팔아먹기 시작했고, 급기야 연간 수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산업으로 발전했다. 디즈니까지 이 산업에 뛰어들어 연간 2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역시 학부모들은 벗겨먹기 쉬운 봉이다!


저자들은 모차르트 효과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관련 연구 데이터를 통합해 이용하는 통계 분석법인 메타분석을 (도대체 뭔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행하여 모차르트 효과는 허구라는 결론을 내린다. 한 편, 영국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모차르트 음악, 과학 실험에 대한 토론, 팝송을 들은 다음 인지능력 시험을 치르게 한 연구를 수행했다. 모차르트 음악은 거의 효과가 없었던 반면 팝송을 들은 어린이들의 점수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블러 효과' 라는 말도 생겼다고 한다. (그 팝송이 영국 유명 밴드인 블러의 음악이었나?) 이에 저자들은 어려운 문제를 풀기 전에는 적당한 외부자극을 통해 적당히 안정된 상태가 (지나치게 긴장이 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불안한 상태도 아닌) 가장 좋은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심리 상태가 좋아지고, 그러면 IQ 검사를 침작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워신텅 대학의 소아과 교수인 프레더릭 짐머만의 연구 그룹에서 모차르트 효과를 적용했다는 유아용 DVD 를 구매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유아용 DVD 로 분류되는 교육용 텔레비전, 영화 등 매체를 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어린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90개 단어를 선정해 그 단어 하나하나를 자녀들이 이해하거나 사용하고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조사 결과, DVD 를 보는 시간이 한 시간 늘어날 때마다 사용하는 어휘가 8퍼센트씩 감소했다고 한다. 오히려 교육용 DVD 가 더 유해한 결과를 끼친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저자들은, 그 효과를 믿는 부모들이 아이와 소통하기 보다는 단지 DVD 앞에 앉혀놓거나 클래식 음악만 틀어놓고 남들만큼 양육하고 있다고 믿으며 아이들을 위해 더 바람직하고 좋은 방법들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모차르트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을 넘어, 최면술, 사람들은 뇌의 10% 만 사용한다는 신화, 여섯번째 감각, 잠재의식을 공략한 광고 (코카콜라에 얽힌) 에 대한 흥미진진한 얘기까지 이르다가 닌텐도의 '매일매일 더욱더! DS 두뇌 트레이닝' 게임을 하면 정말 머리가 좋아질까에 대한 의문에 다다른다. 여러 실험 결과를 통해 저자들은 게임을 계속하면 게임 수행 능력은 향상되지만, 그렇다고 그 능력이 일상 생활에 필요한 다른 보편적인 능력까지 함께 향상시키진 않는다고 주장한다. 어떤 학생은 훈련을 통해 숫자를 79자리까지 기억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자를 기억하는 능력이 향상되진 않았다고 한다. 


두뇌 트레이닝 게임에 대한 의문에 이어서, 한 가지 분야에서의 능력이 다른 분야로 이전될 수 있을까? 에 대한 실험들이 소개된다. 2003년 로체스터 대학에서 발표한 실험이었는데, 그 결론은 비디오 게임을 하면 여러 가지 기본 인지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었다. 이 실험을 수행한 그린과 베어블리는 6개월 동안 비디오 게임을 전혀 하지 않은 초심자들을 대상으로 후속 실험을 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메달오브아너' 를, 다른 그룹은 '테트리스' 게임을 하루 한 시간씩 열흘간 하도록 했다. 두 그룹은 게임 훈련 전 기본적인 인지, 지각, 주의 능력을 테스트 했고, 게임 훈련 이후 다시 테스트를 했는데, '메달오브아너' 게임을 수행한 그룹의 인지과제 수행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인지과제 수행 테스트 중에는 '가용시각장' 으로 알려진 테스트가 있었는데, 피실험자가 응시하고 있는 화면에 순간적으로 단순한 물체가 보였다가 사라지고 난 뒤 그게 무엇이었는 지 맞추는 것이었다. 게임 특성상  '메달오브아너' 가 '테트리스' 보다 그런 능력이 더 필요한 게임이므로, 당연히 '메달오브아너' 게임으로 훈련한 그룹이 그런 인지 능력이 더 많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이 실험 결과를 두고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들은 1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보고, 빠른 판단을 내리며,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도 출근길 지하철에서 북적 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부딪히거나 넘어지거나 남의 발을 밟거나 자기 발을 밟히지 않으려고 주위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쉬지않고 반응하고 있지 않은가? 평소에도 그런 훈련을(?) 하고 다니는데 그건 효과가 없고, 단지 1인칭 총싸움 비디오 게임 10 시간 했을 뿐인데 기본 인지 능력을 그렇게 향상 시킬 수 있다고? 글쎄, 만약에 어떤 사람의 인지 능력 최대치를 수치화 했더니 50 이었다면, 그 사람의 능력 한계치를 넘나드는 45~55 정도의 능력치가 필요한 과제를 꾸준히 수행해야 그 능력을 50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저자들의 의심을 반박할 수 있다. 총싸움 게임은 진짜 신경을 바짝 세우고 집중해서 열심히 해야 한다. 안그럼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전이나 지하철 출근길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평소에 늘 하던대로만 하면 된다. 늘 하던대로만 한다면 능력 향상 따위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 의심을 시작으로 실험을 직접 재현했다.


저자들은 부트라는 연구자와 함께 공저자로 참여하여 비디오 게임의 효과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들의 연구에서는, 피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사전에 인지능력 시험을 하고, 한 그룹만 20 시간 정도 비디오 게임 훈련을 시킨 후, 다시 두 그룹 모두 인지능력 시험을 했는데, 그 결과 두 그룹 모두 비슷한 정도로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저자들이 이와 같이 똑같은 실험을 했는데 다른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사람들은 거의 항상 과업을 재수행할 때는 예전보다 잘한다. 그런데 이전 실험들에서는 통제집단(게임을 하지 않은 집단)에서 시험을 다시 수행했을 때 전혀 능력 향상이 없었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정확히 어떤 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진 않았는데,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목적이 있는 실험이었기 때문에 어떤 편향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듯하다. 게임을 수행한 집단에서 인지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에 대해서는 '기대 효과' 를 언급했다. "광고를 통해 모집된 참가자들이나 선발된 게이머들은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어서 실험에 더 주의를 기울이며 더 잘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반면, 게임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은 자기가 참여한 실험이 비디오 게임 연구라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라며. 그러니까, 비디오 게임의 효과에 대한 연구라는 것을 알고 참여한 게이머들이 더 열심히 인지능력 테스트를 했으니 당연히 더 잘 했을 거라는 얘기다.


마지막에 저자들은 확실하게 두뇌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소개했다. 바로 운동하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것이라 젊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칠 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긴 한데, 그럴 듯한 주장이긴 하다. 노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유산소 운동을, 다른 그룹은 스트레칭과 토닝운동을 시켰는데, 유산소 운동을 한 그룹에서 인지과제를 푸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유산소 운동이 효과적으로 심장 건강을 향상시키며 뇌혈류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뇌를 젊고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음, 나도 앞으로 운동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재력 착각' 편에 소개된 실험들과 저자들의 주장은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사람들은 어떤 능력을 향상시키거나 결과를 얻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방법 말고 좀 더 쉽고 간단한 지름길을 찾고자 하는데, 그러다가 얼마나 많은 함정에 빠지게 되는 지 생각해볼 일이다. '능력의 이전' 에 대해서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흔히들 머리만 좋으면 뭐든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은 당연히 머리가 좋을 거라고 생각하며, 거기다 노력도 열심히 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수능 시험 점수가 높으면 대학에서 공부도 더 잘 할까? 대학 학점이 높으면 일도 잘 할까? 이력서 잘 쓰면 회사에서 보고서나 기획서도 잘 쓸까? 면접관 질문에 대답 잘 하면 회사 내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까? 면접관의 어려운 질문에 참신하게 대답하면 회사에서도 어려운 과제를 참신하게 해결할까? 실제 어떤 일을 시키기 전에 정말 그 일을 잘 할 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누가 이런 거 좀 연구해줬으면 좋겠다. 


학교나 회사에서 사람들을 평가할 때 서류와 면접 등으로 평가하며 점수를 매기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지원자들의 우열을 가려내기 위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아니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기준을 딱히 그런 것 말고는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정식의 '착각하는 CEO' 같은 인사 경영 관련된 책들을 보면 채용이나 성과 평가가 얼마나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일 수 있는 지 느낄 수 있다)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나 스펙 또는 모범 이력서와 모범 답안은 자신을 뽑아주실 면접관들에게 '당신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런 노력들을 했어요! 뽑아만 주신다면 말 잘 들을게요!' 라는 적극적인 구애 행동의 증거는 될 테니까, 충성도나 성실성이나 사회성 등을 간접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최고의 인재 몇 명을 놓치게 되더라도, 최악의 쓰레기들을 훨씬 더 많이 솎아낼 수 있으며, 지금까지 결과를 봐도 썩 괜찮지 않았느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방법이 최선인지 아닌지는 다른 여러가지 방법들을 써보지 않고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길고 짧은 건 대어 보아야 안다' 고 하지 않았나? 점수로 잘라내서 0.1 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게 제비뽑기보다 과연 합리적일까? 그냥 일정 커트라인만 넘으면 모두 지원을 받은 다음에 걍 제비뽑기로 직원을 뽑으면 회사가 망할까? 글쎄, 더 잘 될 지 누가 아는가? 아무도 해보지 않았는데!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를 보면, '위기에 빠진 천재들' 에서 일정 수준을 넘어선 '충분히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 똑똑함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들이 해내는 '충분히 훌륭한' 업적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들이 나온다) 대학이나 회사의 면접관들은 진짜 '능력의 이전' 을 믿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을 읽도록 해야한다!


또 한가지 재미있었던 건, '원인 착각' 편에서 심슨 가족이 인용되었다는 것이다.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된 미국 책들 중, 심슨 가족을 인용한 것들을 종종 본다. 30년 가까이 장수한 만큼 다양한 주제와 이야기거리가 나오나보다. 몇년 전 국내에도 '충공깽' 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미국 특유의 비꼬기 유머가 재미있어 TV 에서 방영할 때 꼭 챙겨보곤 했었는데. 이 책에서 인용한 부분이 참 재미있다. 역시 심슨 가족! 


곰 한 마리가 나타나자 마을에서는 곰을 쫓아내기 위해 헬리콥터와 사이렌을 장착한 트럭까지 갖춘 곰 순찰대를 조직했다.

호머 흐흠, 곰이 보이지 않는군. 곰 순찰대가 기가 막히게 일을 잘하는 모양인데.

리사 그것 참 그럴듯한 논리인데요, 아빠.

호머 고맙구나, 아가.

리사 (땅바닥에 돌멩이를 하나 주워들며) 아빠의 논리대로라면, 저는 이 돌멩이가 호랑이를 쫓아낸다고 주장할 수 있어요.

호머 어어, 돌멩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

리사 물론 돌멩이는 그런 일을 못하죠. 그냥 멍청한 돌멩이일 뿐인걸요. 하지만 이 근처에는 호랑이가 안보이잖아요. 아빠는 호랑이를 보셨어요?

호머 그렇구나! 리사, 네 돌을 사고 싶구나!


저자들은 결론 부분에서 사람이 이런 착각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직관을 과신하여 경솔하게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면서 좀 더 겸손해지길 권장한다. 잼의 맛을 평가하는 실험에서 직관과 분석에 대한 비교를 한 부분이 있는데, 어떨 때 직관을 믿고 어떨 때 믿지 말아야 하는 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어떤 것을 판단할 때 새롭고 유용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나 기회가 더 이상 없을 때는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고민하며 분석해봤자 별 도움도 안되고 오히려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직관을 발휘해야 할 때가 있고 분석을 하고 좀 더 시간을 들여 생각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인데, 점점 복잡해지고 변화가 빨라지는 세상에서는 아무래도 분석적인 태도와 능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심리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비지니스 분야의 다른 책들에서도 직관이 어떻게 사람들을 배신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자주 나오는데, 그와 관련하여 휴리스틱 이론 자료들도 찾아보면 재미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개인적으로 떠올랐던 '고릴라' 에 대한 기억. 


언젠가 아내와 집에서 영화를 보려고 VOD 목록을 보던 중, 아내가 어떤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난 그걸 봤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우리 이거 봤잖아? 했더니, 아내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내용인데 본 기억이 안나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결말이 기억나느냐고 되물었다. 생각해보니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 거다. 어...그게...그러게? 영화가 어떻게 끝났는 지 기억이 안나네? 내가 우물쭈물 하는 모습을 보더니 아내가 씨익 웃으면써 또 물었다. 해피엔딩이었어, 아니었어? 봤다면 정확하진 않아도 그 정도는 기억이 나야하는 거 아냐?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말하길, 이 영화 지난 주에 VOD 로 처음 나왔는데, 우리가 최근 2~3 주 동안은 유료 영화를 사서 본 적이 없다는 거다. 헐, 그럼 난 영화 장면이 왜 기억나는 거지? 도대체 내 기억이 어떻게 된 건지 아내와 얘기를 나누다가 마침내 내린 결론. '출발! 비디오 여행', 혹은 '영화가 좋다' 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그 영화를 봤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 프로그램들에서는 영화를 너무 자세하게 소개해줘서 실제로 먼저 봤던 영화가 나오면 와, 이거 완전 영화 내용을 다 말해주네? 게다가 가장 재미있고 중요한 장면도 다 보여주잖아? 굳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군! 이런 말이 나올 정도인데, 그러다보니 내가 안 본 영화인데도 봤다고 착각한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 공부를 할 때 어려운 부분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학습 자료를 여러 번 읽게 된다. 처음에 접했던 그 학습 자료가 정확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또는 잘못 이해한 것을 그게 맞나보다 하고 계속 공부를 하다보면, 그 잘못된 지식이 강하게 기억에 남게 된다. 이후 그동안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올바른 지식을 다시 익힌다고 해도, 그 잘못된 지식이 쉽게 수정되지 않고 나중에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한 번 기억에 남은 것을 지우거나 수정하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반복해야 한다. 시험 공부를 할 때 연습문제를 풀고나서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며 정답을 외운다. 시험볼 때 마침 운좋게도 똑같은 문제가 나오면 풀어봤던 문제라는 건 기억이 난다. 아! 이거 아는 문젠데! 이런, 근데 정답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고민하고 고민하다 가장 친숙한 녀석을 답으로 찍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연습 문제 풀 때 처음에 선택했던 오답을 시험볼 때 또 다시 찍었던 것이었다. 면접볼 때 그랬던 적도 있다. 기술 지식 관련한 면접관의 질문에 안다고 대답하고 설명하다보니, 과거 학습 초기에 잘못 이해한 것을 당당하게 주저리 주저리 떠벌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을 공부했던 당시에 뒤늦게 제대로 된 자료를 보고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공부를 했었지만, 글쎄 면접봤을 당시에는 내가 그랬다는 것조차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바보같으니!



● 목차


01. 주의력 착각 - 제가 봤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 가운데 있는 고릴라
    • 콘리가 보지 못한 고릴라
    • 핵 잠수함과 어선의 충돌
    • 왜 자동차 운전자들은 오토바이를 못볼까?
    • 첨단장치는 조종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 "전화하지 마세요. 제발!"
    • 누구를 위해 벨은 연주하나
    • 예외 상황을 잘 알아채는 사람
    • 의사들이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이유
    • 주의력 착각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주의력 착각의 사례


02. 기억력 착각 - 선수의 목을 조른 감독

    • 기억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 충돌하는 기억
    • "방금 전 자동차 앞 유리에 총 쏘지 않았나?"
    • 바뀐 것을 찾아내는 전문가들
    • 지금 당신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가
    • 남의 기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
    • 생사를 결정하는 문제에 대한 망각
    • 9월 11일,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근사한 기억
    • 기억을 항상 신뢰할 수 있을까?

03. 자신감 착각 - 똑똑한 체스 선수와 멍청한 범죄자의 공통점
    • 모두 자신이 과소평가 받는다고 생각하는 곳
    • 실력이 부족한데도 깨닫지 못하는
    • 자신감의 위기
    • 능력있는 사람이 반드시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자신감의 특성
    • 다윗은 왜 골리앗에게 덤볐나
    • 자신감을 너무 믿지 말라
    • 그녀의 자신감과 그의 유죄판결

04. 지식 착각 - 기상캐스터와 펀드 매니저의 차이점
    • 성가신 아이처럼 굴어서 좋은 점
    • 최상의 계획이란 무엇인가
    • 당신이 안다고 생각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면?
    • 지식 착각이 불어온 심각한 위기
    • 많은 것이 나쁠 때도 있다
    • 익숙함이 주는 힘
    • 엉뚱한 전문용어가 착각을 부른다
    • 일기예보가 점점 정확해지는 이유
    • 왜 지식 착각은 계속될까?

05. 원인 착각 - 성급하게 결론짓기
    •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신다
    • 원인과 증상
    • 믿음이 '이유'가 되지 않게 하라
    •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나?
    • "네 돌을 사고 싶구나"
    • 백신 가설
    • 테레사 수녀, 쿠엔틴 타란티노, 제니 멕카시가 다 아는 것

06. 잠재력 착각 - 빨리 똑똑해지는 방법
    • 모차르트 마법으로 영재 만들기
    • 언론이 만들어낸 파급효과
    • 은밀한 거짓말
    • 잠재의식에 얽힌 사이비 과학
    • 두뇌도 트레이닝이 되나요?
    • 잠자는 잠재력을 깨우는 비법
    • 비디오 게임으로 인지능력 향상하기
    • 두뇌 운동보다는 걷기 운동이 뇌를 살린다

결론 - 직관력에 대한 환상
    • 첫인상이 잘못되었다
    • 잼 선택하기와 강도 식별하기
    • 기술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