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싱꿍꼬또
어린 아이들은 궁금한 게 참 많다. 이게 뭐에요? 저건 뭐에요? 그건 왜 그래요? 왜 안되요? 왜요?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계속 물어보는 탐구자. 그들에게 의심이란 것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가지게 되는 공통된 질문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 산타 할아버지는 진짜로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꽤나 일찍 깨닫게 된다. 일곱살 때쯤인 거 같다. 누군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고 말해줬다. 사실은 부모님이 선물을 사다주는 거라고. 그 뒤 크리스마스 아침 아버지가 산타 할아버지가 냉장고에 선물을 놔뒀다고 해서 열어봤더니 크런키 초코렛이 몇 개 있었다. 애걔...하며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산타 할아버지한테가 아니라 부모님한테. 또 다른 질문. 귀신은 정말 있을까? 귀신은 산타 할아버지와는 많이 다르다. 귀신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은 꽤나 오래 간다. 유물론자이며 무신론자인 나는 영혼이나 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때 귀신을 두려워했던 기억은 아직 남아있다. 그 기억은...특정한 조건이 만족되면 불쑥 튀어나와 심장을 채찍질하고 혈관을 움켜쥐며 공포의 감정을 유발한다. 믿음과 공포는 별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때쯤 귀신에게 납치당할 뻔한 기억이 있다. 물론 꿈이지만. 생생한 꿈. 단칸방에서 살았던 때라 세 식구가 이불을 깔고 잤는데, 머리 쪽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어떤 귀신들이 마치 사람을 들것에 실어 나르듯 자고 있는 나를 들어 피아노 의자에 눕히고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했다. 방 안은 빨간색 파란색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앗, 안 돼...! 피아노 의자가 없으면 피아노는 어떻게 치라고! 날 그냥 두고 가! 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때 옆에 누워있던 아버지가 팔을 뻗어 나를 다시 피아노 의자에서 끌어내렸다. 방 안의 빨간색 파란색 불빛이 사라지고 귀신들도 사라졌다.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잠들었고 그래서 나도 그냥 다시 잤다. 그 귀신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저승사자였던 것 같기도 하고, 소복 입은 긴 산발머리 귀신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꿈을 꾼 건 아마도 전설의 고향 탓이었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데, 그때는 그게 참 무서웠다.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또 왜 봤을까. 그것도 불을 끄고 이불 속에 숨어서 말이다. 전설의 고향을 본 날이면 밤에 잘 때 이불을 눈 바로 밑에까지 덮고 어딘가에 귀신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 싶어 천장 구석 구석을 살펴보곤 했다. 잘 때는 귀신이 잡아갈까봐 번데기처럼 온 몸을 이불로 감쌌는데, 특히 발이 이불 밖으로 나오면 안 됐다. 귀신이 내 발을 잡을 수도 있으니까. 이불로 발을 그냥 덮기만 하지 않고, 발을 살짝 들어 이불 끄트머리를 안쪽으로 말리게 한 다음 그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마치 침낭에 들어간 듯한 느낌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귀신이 이불을 들어올며 내 발을 잡을 수도 있으니까. 무슨 근거로 이불이 귀신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준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땐 그냥 그랬다. 그런데 자는 동안 이불을 차버리고 뒤척거려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보면 이불을 안고 있거나 깔고 누워 있었다. 요즘도 잘 때는 그때처럼 이불을 발 끝까지 감싼다. 귀신 때문은 아니고, 안그러면 발이 시렵기 때문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착한 어린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고 그게 어떻게 퍼지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그런 말을 듣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기준으로 보면 난 착한 어린이는 아니었다. 일찍 일어난 기억은 없고, 늦게 잔 기억은 많다. 학교 갔다 와서 동네 친구들이랑 집 앞 주차장이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저녁을 먹고 또 나가서 놀았다. 엄마가 나와서 이름을 부르면 맞기 전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집으로 들어가 마지막 하나가 남을 때까지 밖에서 계속 노는 거다.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모래가 떨어지기 때문에 일단 화장실부터 들어가서 옷을 벗고 씻고 나와야 했다. 아버지는 일과 술로 항상 늦게 들어왔고, 어머니는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큰 텔레비전이 있는 어떤 집에 모여 사랑과 야망 같은 드라마를 보며 과일과 다과와 담화를 나누다 들어왔다. 그동안 나는 TV 를 켜고 잠이 올 때까지 전설의 고향 같은 것을 보았다. 그때 TV 에서 본 귀신이나 무서운 장면은 몇 일 동안 계속 생각나서 밤에 잠을 잘 못자기도 했다. 그러다가 귀신한테 납치당하는 꿈을 꾼 거였겠지.
밤낮 가리지 않고 놀았던 때인데, 난 낮에 놀았던 것보다 밤에 놀았던 기억이 더 많다. 딱히 장난감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정도였고, 한 때 줄팽이가 유행했을 땐 미친듯이 팽이를 치기도 했다. 팽이는 길거리 아스팔트나 보도블럭에서 돌리면 영 시원찮았기 때문에 반반한 시멘트 바닥인 아파트 공동 현관 앞 복도에서 쳤다. 그러다가 시끄럽다고 어른들이 소리를 치면 다른 현관으로 이동해서 또 팽이를 쳤다. 여름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잠자리가 무지하게 날아다녔다. 그때는 미친듯이 잠자리를 잡고 다녔다. 친구들이 여럿 모이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38선, 얼음땡, 다방구, 땅따먹기, 사방치기 등을 하며 놀았다. 그 중 친구들을 골탕먹이기 좋은 놀이는 술래잡기, 그것도 밤에 하는 술래잡기다. 불빛이 닿지 않는 아주 컴컴한 곳은 숨는 것도 무서웠지만 그곳에 숨어있을 것 같은 친구를 잡으러 가는 것도 무서웠다. 그래서 밤의 술래잡기는 깜짝 놀래키기 혹은 깜짝 놀라기 놀이가 되기도 했다.
울타리 위 혹은 건물 담장에 올라가서 걷는 것도 놀이 중 하나였다. 놀이터 울타리는 가슴 높이에 5센치미터 정도 두께였다. 그 위에 올라가 양팔을 벌려 균형을 잡으며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떨어지지 않고 친구들보다 더 많이 걸어가면 이기는 거였다. 균형을 잃어서 떨어지면 친구는 자기가 이겼다고 좋아했고, 그러면 난 바람이 불어서 떨어진 거니까 다시 해야 한다고 우겼다. 아파트 화단과 인도변 울타리는 통나무 모양의 철근 콘크리트 울타리였다. 각각의 통나무는 높이가 달라서 들쭉날쭉 했고, 중간에 빠진 것도 있는가 하면 윗 부분이 깨져서 철근이 삐죽 튀어나온 것도 있었다. 울타리를 따라 심어진 회양목 같은 나무들이 너무 커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켜가야 할 정도로 통나무 몇 개를 덮어 튀어나와 있기도 했다. 그래서 그 통나무 울타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높이 솟아있는 것만 밟으며 깡총깡총 뛰어서 끝까지 가는 것도 도전적인 놀이였다. 아파트 단지 한쪽 진입출로에서 반대편 진입출로까지 통나무 울타리들이 죽 이어져 있었는데, 물론 중간 중간 교차하는 도로가 있어 끊어지는 구간이 있긴 했지만, 그 길이 꽤 길어서 도중에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가기는 쉽지 않았다. 인적 드문 밤에는 혼자서 하기 무서우니까 친구들 몇 명이 모여 줄을 서서 속도를 맞춰 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로등이 꺼져있거나 어두운 곳은 무서웠다. 그때 어떤 친구가 노래를 부르면 귀신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만화 주제가 같은 노래를 불렀는데, 더 어두운 곳에선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특히 가장 뒤에 있는 친구가 가장 크게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럴수록 더 무서워졌다. 귀신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노래에 의지하면 할수록 귀신이 근처에 있고 심지어 우리가 노래를 멈추기를 기다리며 따라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점점 믿음으로 변해갔기 때문이었다.
수능 끝난 후였던가? 대학교 휴학하는 동안이었나?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운동 삼아 잠깐 동네 태권도장에 다닌 적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밤에 태권도 관장님과 사범님들이 초등학생 제자들 담력을 키운다며 인근 둔촌동 일자산 공동묘지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그 때 관장님이 나한테 애들 겁주는 거 좀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흔쾌히 도우미로 나섰다. 산길 중간에 모여있던 아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한 명씩 혼자서 어두운 산 언덕길을 올라 공동묘지를 지나 반대편에 기다리고 있는 사범님에게 가는 것이었다. 난 공동묘지 입구 근처 샛길 안쪽에 앉아있다가 아이들이 지나갈 때 다리를 다쳐서 그런데 좀 도와달라며 흐느끼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아이들을 불렀다. 얘야아...다리를...다쳐서...그런데...이리 와서...나 좀...도와줘어...어서...이리 와...어떤 아이는 못본 척 무시하고 지나갔고, 어떤 아이는 이이씨 쒼발년아아! 하면서 막 욕을하고 으르렁거리며 공격 태세를 취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신발을 던지기도 했다. 난 돌을 던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신발 한짝을 눈 앞에서 잃어버려야 하나 귀신 가까이 가야하나 고민하는 그 아이에게 다시 신발을 던져주었다. 아이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내 앞으로 가까이 온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도 하나도 없었다. 공동묘지 가는 길에 아이들한테 노래를 부르면 귀신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말해줬다면 노래를 불렀을까?
여덟 살 정도까지 사람은 마트료시카나 양파 같은 것이어서 껍데기가 한 겹씩 쌓여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른 안에는 더 작은 사람이 들어있고, 그 안에는 더 작은 어린이가 들어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언젠가 큰 병원에 갔을 때 기괴한 해골과 핏줄과 근육이 그려진 해부도를 보고 마치 귀신을 본 것만큼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해골이 너무 허약해 보여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그냥 엄청나게 징그럽고 흉측해 보였다. 그때쯤부터 세상에는 엄마와 귀신 말고 무서운 게 참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TV 에서 뭔가를 보고 잠을 못잘 정도로 무서웠던 것 중 최고는 미국 드라마 V 였다. 다이아나가 쥐를 잡아먹는 것도 그랬지만, 외계인들이 납치한 인간들을 식량으로 만들어 유리관에 보관하고 있던 거대한 창고 장면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보다 더 경악스럽고 끔찍했던 것은 속이 보이는 유리 관 안에 초록색 외계인 시체 옆에 누워있던 어떤 여자가 막 깨어난 장면이었다. 그 관은 우주로 방출되기 직전이었고 여자는 죽을 때까지 시체와 함께 우주를 떠돌아야 하는 공포를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요즘 보면 허술하고 어색하기 짝이없는 장난감 같은 분장이지만 그때는 그 외계인 얼굴이 왜 그리 험악하게 느껴졌던지. 우뢰매 외계인 악당들은 그보단 덜 무서웠다. 밤에만 나타나며 노래를 부르면 가까이 오지 않고 굳이 이불 속에 숨은 아이에게 해코지 하지 않는 귀신 따위는 점점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누구나 그렇게 되듯,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다름 아닌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다. 이제는 귀신이나 외계인이나 괴물 따위가 나오는 꿈은 꾸지 않는다. 사람이 나오는 꿈을 꾸는데, 흐헉 소리와 함께 팔 다리를 파다닥거리며 잠에서 깨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