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 어떤 국민의 힘인가요? 일본 국민의 힘?
부자와 거지, 신세대와 구세대, 남자와 여자,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공산당과 친일파. 늘 갈라지고 분열하면서도 어떻게든 버티는 한심하면서도 신기한 나라.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내 심장이 흥분하고 분노할 때마다, 사람들마다 입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거지,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사람들끼리 다투는 문제들을 보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되도록 편견이나 극단적 치우침에 빠지지 않으려고 늘 내 생각을 반대로 뒤집어 역지사지 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최근 3.1 절부터 터져나온 한일 관계, 반일 감정에 대한 논쟁과 다툼은 확실히 윤석열과 국민의 힘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이유는, 미래 지향이라는 이유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그냥 묻어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역사 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는 것.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인류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뼈아픈 과거일수록 더욱 치열하게 들여다보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역사 청산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하는 불씨를 없애겠다는 데 의의가 있다. 독일은 말과 행동으로 그런 의지를 보였고 믿음을 얻었다. 하지만 일본은 아니다. 한일 관계에서 진정한 역사 청산이란, 다시는 제국주의 또는 전쟁과 정복이 반복되지 않도록, 미래 우리 자손들이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비극을 예방하고 방지하는 확실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이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반인류 범죄를 반성하고 사죄하며 전쟁 범죄자들을 국가 영웅으로 떠받드는 어리석음을 중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본은 피해자들이 사과라고 느낄만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사과 한답시고 한 유감 표명은 그냥 지들 기분이 안좋다는 뜻이지 잘못했고 미안하고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하겠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백번 양보해서 말로 사과했다고 친들,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겉으로는 토착 종교나 문화로 포장하면서 실제로는 여전히 전쟁 범죄자들의 뜻을 기리고 있지 않은가?
한일 관계에서 불편한 역사의 청산은 일본이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말과 행동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 피해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그 역사는 반복된다. 그런데 역사 청산은 커녕 회피하고 그냥 땅에 묻어버리려고 하면서, 그렇게 그 위험하고 처절한 역사가 반복될 씨앗을 심으면서, 미래와 미래 세대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도대체 어떤 미래와 미래 어떤 세대를 의미하는 건가? 한국이 이런 식으로 정당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고 국민의 의견이 한 뜻으로 모이지 못하고 분열되는 것을 보면, 언젠가 또 일본 식민지가 되고 안그래도 쪼개진 국가가 또 반으로 쪼개진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둘째 이유는, 대통령과 집권당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자국 국민들보다 외국 국민들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힘에서는 일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두고 "악을 쓴다" 고 말했다. 민족 비극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한 역사 청산을 그저 개인적인 복수나 땡깡 정도로 치부하는 치명적인 단어 선택이었다. 그런 단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제대로 사과받지 못해서 한이 맺힌 피해자들을 그냥 돈이나 뜯어 먹으려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양아치 도둑 집단으로 인식하는 듯 보인다. 일본인들이 그런 말을 들으면 한국인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는가? 저 봐라, 한국의 집권당이 자국 대법원의 판결까지 뒤집으며 저렇게 말했다, 일본을 비난하는 '일부' 한국인들은 선량한 일본을 이유없이 비난하는 싸이코 집단이다, 이렇게 말할 것 아닌가? 악을 쓴다니? 정치인들이 자국인들 편을 들어야지, 왜 자국 국민들을 우습게 보고 무시하는 외국 편을 드는 것인가? 그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인가? 전쟁 범죄 피해자들이 왜 수십년이 지나도록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는지, 도대체 어떤 아픔이 있었길래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제대로된 정치인이라면 귀를 귀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국민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그들이 정치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왜 그런 자들을 정치하라고 뽑아주는 것인가? 그런 자들을 정치하라고 뽑아주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 걸까?
모든 정치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익이어야 한다.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한다. 국익은 먼저 국민들의 정서와 행복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들의 대변인이어야 한다. 경제적인 국익도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구체적인 비전과 계획이 있어야 한다. 지금 윤석열과 국민의 힘은 우리 국민들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가? 그들이 말하는 미래는 얼마나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비전을 바탕으로 한 것인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나 통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영원한 적으로 못박은 채 그려진 미래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 미국 중국 일본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가질 수 있는 미래를 꿈꾸고는 있는 것인가? 말로만 미래를 위해 어쩌구 하는데 그게 도대체 어떤 미래인지, 그리고 그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어떻게 기여하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도 계획도 청사진도 없다. 정말 극단적으로 생각하거나 분노와 증오에 휩싸이기 싫은데, 도무지 이 놈의 나라는 그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미칠 노릇이다.
아직도 분열과 다툼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선동적이고 자극적이고 비논리적인 구호만 넘쳐나고 있다. 그 어디에도 합리적이고 진지한 논리는 없어 보인다. 특히 공산당 대 친일파 프레임 전쟁은 3.1 절만 되면 늘 터져나오고 반복되는 일이다. 이 역시 역사 청산이 첫 단추부터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 크다.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지금 당장의 이익과 자기들 각자의 자리만 생각한 탓이 크다. 서로 비난하고 싸우는 것은 각자 꿈꾸는 미래가 있기 때문일텐데, 그것부터 얘기해보고 그런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지금 하는 일이 옳은지 따지는 것이 순서 아닐까 싶다. 단, 당장 5년 10년 후의 미래뿐만이 아닌, 100년 후까지 바라보는 미래여야 할 것이다. 영원한 적도 동맹도 없는 냉정하고 잔혹한 국제 관계에서, 그 와중에 아직 힘도 없고 주변 강대국의 대결 구도 한복판에 서서 눈치 잘 보며 처신해야 하는 입장에서, 너무 성급하게 역사를 생매장하고 한 쪽 눈만 뜬 채 무모하게 움직여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장의 이익 뿐 아니라 미래의 이익까지도 송두리째 날려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유토피아를 꿈꾼다면 그릴 수 있는 모습은 수백 수천개 되겠지만, 국제 관계와 안보 면에서 생각해보자면, 한국이 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들에 할 말은 하면서 확실하게 이익을 챙길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북한과 통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고 방황하겠지만 둘로 쪼개진 상태로는 강한 힘을 가지기 힘들다. 그런 힘을 바탕으로 일본이 다시는 한국을 넘보지 못하게 확실하게 사과 받고 재발 방지 약속도 받으면 좋겠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역사를 알고 있는 미국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봤을 때, 일본에게 먼저 손을 내밀면서 사과 안해도 된다며 너털 웃음을 짓는 한국과, 엄중하게 경고하며 진심어린 공개적 공식적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고야 마는 한국 중, 어떤 한국을 더 강하고 무시할 수 없는 나라로 볼까? 형제들끼리 쪼개진 채 영원히 주변 국가들을 끌어들여 서로 싸우는 한국과, 아픔을 딛고 끝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힘을 합치는 한국 중, 어떤 한국을 더 성숙하고 앞선 나라로 볼까? 대체 우리는 어떤 한국을 꿈꾸는 걸까?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한국을 그런 나라를 만들어가는 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