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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와 나는 우리의 아름답고 찬란한 젊은 날을 기리기 위하여 누드 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우리의 아찔하고 황홀한 모습을 들뜬 듯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돌연히 깊은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얼마 후 그는 미술을 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빳빳하게 뻗은 자신의 성기를 본떠 청동상을 만들어 나에게 선물했다.
그의 자랑스러워하는 얼굴과 내 손에 쥐어진 그의 소중한 분신을 번갈아 보는 동안 머리 속에는 수백가지의 말이 떠올랐다. 그 중 어떤 말을 해야할 지 생각하느라 당혹스럽고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나에게 들뜬 목소리로 그것을 만들 때 오직 너만을 생각했다며, 우리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의미 또한 있다며,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말들로 자신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에겐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흘러도 하늘을 찌를 듯 머리가 솟구쳐있는 그 물건에 전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에게 콘돔 사용을 촉구하는 의미로 그것에 콘돔을 씌웠다. 그는 내가 없는 사이 콘돔을 자꾸만 벗겼고, 그 때마다 나는 그가 없는 사이 다시 콘돔을 씌웠다.
언젠가 그가 우리 침대의 머리맡에 있던 거대하고 빛나는 그것에 씌워진 콘돔을 보고도 벗기지 않던 그 날 밤, 그는 케이크를 먹다 말고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갑자기 화를 내고는 밖으로 나가더니 관계 청산을 통보했다.
그가 떠나고 문득 문득 무겁고 차가운 그림자가 뒤에서 나를 쳐다보는 느낌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아마도 그의 입으로부터 퍼졌을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내가 그의 멋진 분신을 가지고 자위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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