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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진솔한 소통은 줄어들고 갈등은 깊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승부, 설득, 양보, 이해, 인정, 존중 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것은 인정이다. 그런데 이 인정이란 말의 뉘앙스에는 이해의 요소가 없다. 이해란 '나도 너라면 너처럼 할 거 같다' 는 느낌이라면, 인정은 '아 됐고, 넌 나고 난 나니까 이 선 넘지 말고 각자 놀자' 는 느낌이다. 이해에는 뒤에 '그러나' 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때면 이해한다는 말이 가식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결국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반면 인정은 뒤에 '그러니까' 가 붙어 서로 이렇게 저렇게 하자는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왠지 쿨한 결단력이 느껴진다.
인정의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해본 사람들은 '이해까지 할 필요는 없고 인정해줘' 라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세상의 다양성은 이해가 아닌 인정을 기반으로 실현되고 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갈등과 반목은 더욱 깊어지고, 언젠가 인정으로 유지된 균형이 깨지는 순간 폭발해버리고 만다. 한마디로, 이해없이 인정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불안정하다. 사람들은 이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우호적이길 원하는 관계라면, 사람들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이해와 관심을 원한다. 거기서 한참 더 멀리 나아가야 존중과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다. 멀고 험한 길이다. 이해의 첫걸음은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공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사적인 모습을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사적인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주고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보기관의 기밀보안등급처럼, 인간관계에서 사적인 사항들에도 등급이 매겨져 있다. 만약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내 친구의 2등급 기밀을 알고 있다면, 그 친구는 나보다 그 사람과 더 친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자신의 3등급 기밀을 공개했는데 상대가 자신의 3등급 기밀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 정도의 친밀한 관계를 거부하거나 보류하겠다는 뜻이다. 서로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에게 자신의 사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도박사가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상대에게 자신의 패를 먼저 까보이는 것처럼 위험하게 느껴진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갑자기 자기 정보를 먼저 공개하는 것도 겁나는 일이다. 마치 타짜가 속임수를 쓰려고 자기 가짜 패를 먼저 까보이며 내 패를 까보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를 공개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뢰가 쌓여야 한다. 상대방이 날 이용해먹으려는 사기꾼이 아니라 사심없이 나하고 친해지고 싶어한다는 믿음. 그런 믿음을 얻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말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꾸준한 정성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권한이나 절차의 문제다. 5등급 정보 열람 권한도 없으면서 3등급 정보를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흔히 사회에서 남의 사적인 일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많은데, 그것은 서로 신뢰가 없는 상태이고 우호적인 관계도 아니고 친밀해지고 싶지도 않은 관계일 때 그렇다. 나는 친해지고 싶은데 상대가 나에게 무관심하다면 그가 예의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섭섭하게 느껴지지 않은가? 만약 직장과 같이 이해관계로 엮인 관계가 아닌, 친밀한 관계 형성이 목적인 조직이라면 신뢰를 형성하는 절차가 생략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동호회나 친목회 같은. 그런 곳에서는 오히려 사적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무례하게 여겨진다.
인간 관계와 사회 생활을 다루는 책들을 보면 심리적으로 적당한 거리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관계가 가장 바람직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인데, 국내 저자의 책들을 보면 어떤 요령이나 기술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해라, 이런 건 꼭 하고 저런 건 하지 말아라, 그런 식으로 연애할 때 밀당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재보는 듯한, 형식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의외인 것은, 경영 비즈니스 분야의 서양 저자들의 책에서 신뢰와 교류를 권장하며 관리자는 팀원들의 사적인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개인주의 경향이 강해 사생활 공개를 꺼리며 감정보다 이성을 중요시 여겨 일에서도 공과 사를 정확히 구분한다고 여겨진다. 오히려 그런 그들이, 게다가 직장 리더십을 다루는 책에서, 서로의 사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하다니! 그런데 거기에는 단서가 있다. 그냥 관심이 아니고 진심어린 관심이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관심이 아니라 진심이란 얘기다.
진심이란 뭘까? 어려운 질문이다. 질문을 바꿔 나는 어떨 때 누군가를 가식적이라 느끼는지 생각해보면 좀 쉬워질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나름대로 정리한 진심이란 이런 것이다. 상대방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해하려는 것.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주고 도와줄 마음이 있는 것. 상대에게 무엇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 뭐 그런 것 아닐까? 진심이 결여된 기교나 기술은 결국 들통이 나게 되어있다. 그런 관계는 공허하고 안정감이 없다. 진심으로 서로를 대하면 서로 신뢰를 쌓고 이해하는 길이 열린다. 진심은 통한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진심을 다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먼저 그렇게 진심을 보이면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바보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용당하지 않을까, 가식으로 보여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진심을 다하는 자세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가치관과 용기가 없다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내려놓을 줄 모른다면, 그런 불안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진심을 다 해 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살면서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게 진심으로 대한다고 느낀 적이 없는가? 그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어쩌면 다른 사람이 먼저 진심을 보이길 기다리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기는 진심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가식적으로 보였던 것일 지도.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진심으로 다가오지 못한 것일 지도. 어쩌면 다른 사람의 진심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일 지도. 아니면 너무 오래 되어서 잊어버린 것일 지도. 자기 자신한테나 다른 사람한테나 진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늘 불안하고 외로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스스로 먼저 진심을 다 하는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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